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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원효대사의 자취, 황룡사지, 여행 정보

by amitabul333 2026. 6. 20.

백련꽃과 연밥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오늘은 첨성대나 불국사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경주의 명소들 사이에서, 비교적 조용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깊고 진한 신라의 숨결을 간직한 사찰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선덕여왕의 지혜와 불교문화의 정수가 녹아있는 '경주 분황사'입니다.

'향기 분(芬)' 자에 '임금 황(皇)' 자를 쓰는 분황사는 '향기 나는 황제의 사찰'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 그림을 보내며 나비가 없는 것을 두고 "신라에 여왕(선덕여왕)은 있으나 배우자가 없다"라고 조롱하자, 선덕여왕이 당당하게 "나는 향기 나는 황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지었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죠. 규모는 아담하지만 국보 문화재와 독특한 매력을 품은 분황사의 3가지 관전 포인트를 소개합니다.

분황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거대하고 독특한 형태의 탑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으로 알려진 국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입니다.

여기서 '모전(模塼)'이란 안산암이라는 돌을 벽돌 모양으로 하나하나 깎아서 쌓아 올렸다는 뜻입니다. 벽돌을 구워 만들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 신라 장인들이 돌을 마치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 올린 지혜를 엿볼 수 있죠. 원래는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훼손되어 지금은 3층만 남아있음에도 그 묵직하고 당당한 풍채는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탑의 사방에는 돌로 조각된 문(감실)이 있고, 그 안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문 양옆을 지키는 늠름한 인왕상 조각과 탑의 네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사자상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탑 주위를 천천히 돌며 이 섬세한 돌조각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수백 년 전 신라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원효대사의 자취

분황사는 한국 불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려로 꼽히는 원효대사가 머무르며 수많은 불교 서적을 집필하고 대중 교화에 힘썼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찰 구석구석에 흥미로운 전설과 자취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탑 뒤편에 자리한 우물인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입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이 우물에는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고 있었는데, 당나라 사신이 이 용들을 물고기로 변하게 한 뒤 통에 담아 몰래 가져가려 했다고 합니다. 이를 알게 된 원덕왕(또는 원성왕)이 사람을 보내 용들을 다시 빼앗아 우물에 풀어주었다는 흥미진진한 설화가 깃들어 있죠. 겉보기엔 평범한 팔각형 모양의 우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보면 한층 더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또한 분황사의 유일한 법당인 보광전 안에는 조금 특별한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바로 모든 중생의 질병과 아픔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입상'입니다. 이 불상은 임진왜란 때 손상된 것을 조선시대에 다시 구리로 녹여 만든 것으로, 인자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일상에 지친 마음의 치유를 바라며 가만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황룡사지

분황사의 또 다른 매력은 사찰 담벼락 너머로 펼쳐지는 드넓은 대지입니다. 분황사 바로 옆에는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동양 최대의 사찰 터, '황룡사지'가 광활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 광활한 터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최고의 포토존이 됩니다. 봄과 초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빛 물결이 일렁이는 '청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가을에는 붉고 노란 황화코스모스와 백일홍이 만발하여 고즈넉한 사찰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넓은 들판을 걷는 산책 코스는 복잡한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최고의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분황사 자체는 30~4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이 넓은 주변 들판과 황룡사지 역사문화관까지 연계해서 걸으면 가장 완벽한 느린 여행 코스가 완성됩니다. 담장에 기대어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나 꽃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은 경주 여행 중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운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여행 정보

  •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 (구황동)
  • 입장료: 무료 (대릉원, 동궁과 월지 등과 달리 무료로 편하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 주차: 사찰 바로 앞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가 매우 편리합니다.
  • 추천 동선: 경주 시내버스터미널이나 대릉원 일대에서 차량으로 5~10분 거리이며, 안압지(동궁과 월지)나 국립경주박물관과 아주 가까워 당일치기 코스로 묶어 방문하기 좋습니다.
  • 한 줄 평: 화려함 대신 담백함으로, 거대함 대신 깊은 전설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향기로운' 경주의 필수 여행 코스입니다.